글쓴이 | 언니네
 43분57초 10곡이 이어져 한권의 책처럼(한겨레) 2008/09/03
한국 모던록의 시작을 알린 록밴드 ‘언니네 이발관’이 4년 만에 새 음반 <가장 보통의 존재>로 돌아왔다. 음반 발매 직전 선주문으로 5천장이 매진됐고, 29일 콘서트도 매진을 앞두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은 1996년 <비둘기는 하늘의 쥐>로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데뷔한 국내 대표적 모던록밴드다. 2집 실패 이후 공백도 있었지만, 멤버 교체 뒤 발표한 음반 <꿈의 팝송>과 <순간을 믿어요>는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활자들이 음악을 입은 듯

“하고싶은 것 마음껏 했다”

언니네 이발관은 “이제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새 음반에서 과감한 시도를 했다. 음반 수록곡 10곡 전체가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을 한 것이다. 대중음악 노래에 당연히 있는 ‘기승전결’ 구조도, 혀끝을 맴도는 후렴구도 없다. “43분 57초짜리 한 곡”이라는 평을 듣는 것도 그래서다. 앨범 속지 첫 장엔 ‘반드시 1번 곡부터 순서대로 들으라’는 안내글을 적었다.

이들이 홈페이지에 내건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미소’라는 글은 언니네 이발관이 지향하는 바를 함축한다. “한 전자제품점에 갔다가 시디플레이어를 팔지 않는단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이 (오프라인) 음반 형태로 내는 마지막 음반이 될 수 있단 생각도 들 만큼. 그런 것들을 부정하고 싶은, 음반이 가질 수 있는 형식적 가치에 답하는 음반을 만들고 싶었습니다.”(이능룡)

음반이 책이나 영화라면 이번 음반 제목인 ‘가장 보통의 존재’는 주인공이랄 수 있다. 리더 이석원은 “어느 찰나,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있는데, 가끔은 그게 굉장히 슬플 때가 있지 않은가”라고 되물었다.

이번 노래들은 가사가 무척 길다. 게다가 간혹 따옴표도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신음 소리처럼 읽히길 바랬기 때문”이란다. 음악을 만드는 방식도 기존과 달랐다. 이야기(가사)를 먼저 짜고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었다. 주제 멜로디 한 부분이 떠오르면 멤버들이 영감대로 즉흥연주를 수없이 반복해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골라서 곡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석원이 담담하게 부르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활자들이 음악을 입고 춤추며 떠오르는 느낌이다.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살아 있는 ‘작은 마음’,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반주하는 ‘100년 동안의 진심’ 등의 노래들이 들어보면 듣기에는 단순하지만 ‘공들이지 않은 듯 공들인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녹음 과정은 오히려 훨씬 힘들었다고 한다. 스튜디오 녹음 작업에 걸린 시일만 1년. 음반 발매일을 다섯 번이나 연기하며 마무리 작업을 했고, 막판에 곡 순서를 바꾸는 바람에 인쇄한 앨범 표지와 속지 7천장을 파기하기도 했다.

첫 곡 <가장 보통의 존재>는 수억원짜리 장비로 녹음한 음악 위에 아날로그 카세트 테이프 녹음을 그대로 이어 붙여 버렸다. 이석원은 “길을 가다 멜로디가 떠오르면 무조건 녹음하기 위해서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며 “녹음된 것을 듣다 보면 아날로그 테이프와 같은 공간감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음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언니네 이발관이 세상과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자기 자신을 노래했던 이들이 타자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본인들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다고 하는데 팬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대중성 지향을 벗어났더니 더욱 대중적이 된 셈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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